제조업 AI, 넓게 쓸수록 손해인 이유
AI를 도입하려는 제조 기업이 가장 흔하게 빠지는 패턴이 있습니다. 구매팀에 하나, 물류팀에 하나, 영업팀에 하나씩 여러 부서에 조금씩 AI 프로그램을 붙이는 방식이죠. AI 프로그램을 여러 개 도입해 보고 가장 좋은 걸 골라 키우겠다는 생각이죠.
이런 방식은 언뜻 보기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여러 AI 프로그램을 시험해 보고 효과적인 걸 골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니까요. 하지만 BCG가 1,250명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넓게 퍼뜨린 기업보다 좁게 집중한 기업이 ROI를 2배 이상 더 만들어 내고 있었거든요.
3.5개 vs 6.1개, 숫자가 보여주는 차이
BCG의 2025년 글로벌 조사에서 눈에 띄는 데이터가 하나 있습니다.
AI 프로그램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은 평균 3.5개의 유즈케이스에 집중하고 있었고, 성과가 나지 않는 기업은 6.1개에 분산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적용 범위가 좁은 쪽의 ROI가 2.1배 높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합니다.

얼핏 보면 직관에 반하는 결과입니다. 더 많은 곳에 AI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전체 효과가 더 클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부서에 파일럿을 돌리면, 각각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따로 놀게 됩니다. 데이터 형식도 다르고, 업무 흐름도 다르고, 관리 주체도 다르죠. BCG는 이 상태를 파일럿만 쌓이고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파일럿만 늘어나고 성과가 안 나오는 이유
그렇다면 제조업에서 AI 프로그램 도입을 할 때 넓게 퍼뜨리면 왜 성과가 안 나올까요?
BCG 조사에서 드러난 원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의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꾸지 못합니다.
구매팀에 AI 프로그램을 하나 붙이면 견적서 비교는 편해질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발주서 작성이나 시스템 입력과 연결되지 않으면 담당자가 다시 수작업으로 이어 붙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분적인 업무 자동화는 곧 부분 수작업을 뜻한다는 거죠.
유지보수 비용이 분산됩니다.
6개 부서에 각각 다른 AI 프로그램을 붙이면, AI 도구마다 데이터 연동, 모델 관리, 예외 처리를 전부 따로 해야 합니다. 특히 BCG 조사에서 자체 개발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11%, 단일 벤더만 쓰는 기업은 4%에 불과했는데, 나머지 대다수는 여러 도구가 뒤섞인 채 표준화도 안 된 상태였습니다.
성과 측정이 어려워집니다.
여러 곳에 AI 프로그램을 조금씩 적용하면 각각의 효과가 작아서, 전체 투자 대비 성과를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경영진 입장에서 AI 투자 대비 성과를 증명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 투자 승인도 받기 힘들어지죠.
여기에 더해, AI 프로그램을 여러 부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업무 자동화 속도까지 느려집니다.
BCG에 따르면 집중 전략을 쓰는 기업은 도입에서 성과까지 9~12개월이 걸리는 반면, 분산 전략을 쓰는 기업은 12~18개월이 걸렸거든요. 후자의 일정은 대부분 과도하게 낙관적인 추정이었다고 BCG는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제조업이라면 어디에 집중해야 하나
BCG 조사에서 AI 가치의 70%는 R&D, 영업, 제조, 공급망 같은 핵심 업무에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IT 부서에서 나오는 가치는 13%에 불과했고요. McKinsey 조사에서도 제조업은 AI 적용 시 10~20% 원가 절감이 보고된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핵심 업무들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문서가 오가는 업무라는 점이에요. 구매팀은 견적서와 발주서를, 영업팀은 거래명세서를, 물류팀은 입출고 문서를, 생산팀은 작업지시서를 다루고 있죠.
McKinsey가 AI 확대의 핵심 병목으로 꼽은 것도 이 지점입니다. 대부분의 기업 프로세스가 문서화되거나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경험 많은 직원의 머릿속에만 있다는 거예요. AI 프로그램이 작동하려면 읽을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한데, 제조 현장의 거래 문서들이 아직 그 형태가 아닌 겁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 문서들이 AI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로 바뀌는 순간 구매, 영업, 물류, 생산 전체에 걸쳐 AI가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한꺼번에 만들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곳에서 깊이 시작하면 여러 곳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조인 거죠.

실제로 AI 도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캐논 역시 재무팀의 송장 자동화 하나로 시작해서, 현재 조직 전체에 165개 자동화 시스템으로 확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AI보다,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AI 프로그램 추천 글을 찾아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어떤 AI 프로그램이 좋은가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묻혀 있는 업무가 어디인가입니다. 거기에 하나의 워크플로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꾸는 업무 자동화가, 여러 곳에 AI 도구를 하나씩 붙이는 것보다 2배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요.
제조업이라면 그 시작점은 높은 확률로 거래 문서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문서 처리에 가장 많은 시간이 묻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무료 문서 현황 진단으로 먼저 파악해 보세요.